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리 팡테옹 아사스 대학교 (문단 편집) == 역사 == 파리 팡테옹 아사스 대학교의 역사는 1100년경 [[프랑스 왕국]]의 철학자, 신학자, 음악가인 [[피에르 아벨라르]]가 현대적 개념의 법을 창시한 후 이를 [[노트르담 대성당|노트르담 드 파리 가톨릭 학교]]의 학생들에게 가르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노트르담 드 파리 가톨릭 학교는 1150년경 [[파리 대학교]] 법과대학(École de droit de Paris)이 되었고, 이는 [[볼로냐 대학교]]의 법과대학과 함께 당시 세계에서 단 두 곳밖에 없는 법과대학이었다. 1229년 교황 [[그레고리오 9세]]는 파리 대학교 측에 [[로마법]]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시켰다. 대신 [[교회법]]을 가르치도록 권고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파리 대학교 법과대학은 교회법과대학(Consultissima Decretorum Facultas)으로 개편되었다. 1679년 프랑스 왕국의 국왕 [[루이 14세]]가 파리 대학교가 다시 로마법과 더불어 프랑스 법을 교육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에 교회법과대학은 [[민법]]과 교회법을 같이 가르치는 민법교회법과대학(Faculté de droit civil et canonique)으로 새로이 탄생했다. 1793년 파리 대학교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해 강제 폐교를 당하자 민법교회법과대학도 자연스레 문을 닫게 되었지만, 머지않아 1802년 집정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지시에 따라 파리 법과대학(École de droit de Paris)로 다시 개교했다. 다만 이전에는 로마법과 교회법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던 것과 달리, 새롭게 태어난 법과대학은 [[프랑스 민법전]] 교육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후 1896년 파리 대학교가 다시 설립됨으로써 파리 법과대학은 본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68혁명의 여파로 1970년 파리 대학교가 13개의 대학들로 해체가 되었고, 이중 파리 제2대학교 팡테옹 아사스가 법과대학의 명맥을 잇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파리 제2대학교는 대학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교육 정책에 따라 2021년 교명에 숫자를 없앤 뒤 파리 팡테옹 아사스 대학교라는 법학 집중 대학교로 리브랜딩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